지선이란 심의 본체라.
「지선은 다만 이 심이 천리에 순연한 것뿐이니, 어찌 사물 위에서 구하랴.」
爱问:「知止而后有定,朱子以为『事事物物皆有定理』,似与先生之说相戾。先生于事事物物上求至善,却是义外也。至善只是此心纯乎天理之极便是,更于事物上怎生求?」
先生曰:「至善只是此心纯乎天理之极便是。何以于事物上怎生求?且如事亲,如何而为温凊之节、如何而为奉养之宜者,所谓定理也。此心纯乎天理之极,则凡所以温凊奉养者,莫非天理之发见。若只于事物上求之,则温凊奉养之事,一一须要安排停当,岂非义外之说乎?」
애가 여쭈었다. "『알고 머무르면 정이 있다』고 했는데, 주자는 『사사물물에 정리가 있다』고 합니다. 지선은 다만 이 심이 천리에 순연한 것뿐이니, 어찌 사물 위에서 구하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선은 다만 이 심이 천리에 순연한 극치이니라. 어찌 사물 위에서 구하랴. 부모를 섬기는 것을 예로 들면, 온凊(溫凊)의 절도와 봉양의 적합함은 소위 정리이다. 이 심이 천리에 순연한 극치에 이르면, 모든 온凊과 봉양하는 것이 모두 천리의 발현이 된다. 만약 사물 위에서만 구한다면, 온凊과 봉양의 일을 하나하나安排해야 하니, 이것이 어찌 의외의 설이 아니랴."
복잡한 task에 직면했을 때, 모든 detail을 exhaustive하게 study하는 대신(사물에 principle을 구하기), 먼저 mindset과 direction을 pure하게 하라(이 심을 천리에 순연하게 하라). 심이 바르면, priorities와 methods는 naturally clear해진다.
「지선은 다만 이 심이 천리에 순연한 것뿐이니라.」
지선은 먼 목표가 아니라 심의 본래 모습이다. 공부는 밖으로 향해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심을 본체로 돌아가게 하는 것 — 심이 지정지일(至精至一)에 이르면, 지선은 자연히 나타난다.
「만약 사물 위에서만 구한다면, 이것이 어찌 의외의 설이 아니랴.」
양명은 주자 격물설의 실제 어려움을 지적한다: 모든 사물에 리를 궁구하려 하면, 부모를 섬기에도 온의 리, 청의 리, 봉양의 리……를 무한히 구해야 한다. 양명의 解決策은 심으로 돌아가는 것 — 심이 바르면, 행위는 자연히 바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