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행의 시작이요, 행은 지의 성취라.
「알고 행하지 않는 자는 아직 없느니라. 알고 행하지 않는 것은 다만 아직 알지 못한 것이다.」
爱曰:「如今人尽有知得父当孝、兄当弟者,却不能孝、不能弟,便是知与行分明是两件。」
先生曰:「此已被私欲隔断,不是知行的本体了。未有知而不行者。知而不行,只是未知。圣贤教人知行,正是要复那本体,不是着你只恁的便罢。故《大学》指个真知行与人看,说『如好好色,如恶恶臭』。见好色属知,好好色属行。只见那好色时已自好了,不是见了后又立个心去好。闻恶臭属知,恶恶臭属行。只闻那恶臭时已自恶了,不是闻了后别立个心去恶。如鼻塞人虽见恶臭在前,鼻中不曾闻得,便亦不甚恶,亦只是不曾知臭。」
「就如称某人知孝、某人知弟,必是其人已曾行孝行弟,方可称他知孝知弟。不成只是晓得说些孝弟的话,便可称为知孝弟。」
「又如知痛,必已自痛了方知痛。知寒,必已自寒了。知饥,必已自饥了。知行如何分得开?此便是知行的本体,不曾有私意隔断的。」
애가 말했다. "如今 사람들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공경해야 할 것을 다 알면서도, 오히려 효도하지 못하고 공경하지 못하니, 지와 행이 분명히 두 가지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미 사욕에 의해 단절된 것이니, 지행의 본체가 아니다. 알고 행하지 않는 자는 아직 없느니라. 알고 행하지 않는 것은 다만 아직 알지 못한 것이다. 성현이 사람들에게 지행을 가르치는 것은, 바로 그 본체를 회복하게 하려는 것이지, 그저那样하게 두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대학이 참된 지행을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이며, 『아름다운 색을 좋아하듯이, 악취를 싫어하듯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색을 보는 것은 지에 속하고, 아름다운 색을 좋아하는 것은 행에 속한다. 다만那 아름다운 색을 볼 때 이미 스스로 좋아한 것이다. 보고 나서 또 마음을 세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악취를 맡는 것은 지에 속하고, 악취를 싫어하는 것은 행에 속한다. 다만那 악취를 맡을 때 이미 스스로 싫어한 것이다. 맡고 나서 따로 마음을 세워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그래밍 책 백 권을 읽어도 프로그래밍을 「안다」가 아니다 — 코드를 써야 한다. 양명의 지행합일은 상기시킨다: true learning은 practice를 포함해야 한다. 알고 행하지 않는 것은 simply 알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이미 사욕에 의해 단절된 것이니, 지행의 본체가 아니다.」
이것이 「알고 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양명의 根本的 診断. 「알고」 있는데 행하지 않는 것은, 지와 행이 둘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가 사욕에 차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지는必然적으로 행동을 포함한다 — 아름다운 색을 보면 자연히 좋아하는 것과 같다.
「아름다운 색을 보는 것은 지에 속하고, 아름다운 색을 좋아하는 것은 행에 속한다.」
이것이 지행合一의 가장 정묘한 비유이다. 아름다운 색을 보는 것(지)과 좋아하는 것(행)은 두 개의 別々の 過程가 아니다 — 보는 순간 이미 좋아하고 있다. 지와 행은同一 心理的 過程의 두 측면, 마치一枚 동전의 양면과 같다.